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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엄청난 연기력에 탄탄한 서사

by 꾸준슬로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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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맥도나 감독, 프랜시스 맥도먼드 주연

이번에 소개할 <쓰리 빌보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모두 탄 영화입니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던 영화입니다. 소재도 참신하지만 이야기의 진행이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웃음이 나올 대목이 하나도 없는 소재를 가지고도 영화는 곳곳에 유머를 배치합니다. 우리의 삶 역시 슬픔이 계속될 것 같다가도 기쁨이 불쑥 등장하기도 하니까요. 그러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삶을 지속할 힘을 얻지 못하겠지요.

주연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정말 엄청납니다. 강인하게 딸을 위한 정의를 촉구하는 어머니이자 딸에게 막말을 퍼부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처입은 어머니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지요. 조연 샘 록웰의 연기도 대단합니다. 인종차별주의자 역할이 하기 참 역했을 텐데 정말 그런 인간처럼 잘 연기합니다. 특히 폭력적인 외면 아래 마마보이이자 어리석은 연약한 남자의 모습까지도 잘 표현했지요.

 

평온한 시골길에 등장한 도발적인 3개의 광고

(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나 역)는 강인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딸이 성폭력을 당한채 살해당하자 그 범인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수개월이 지났으나 경찰 수사는 진전이 없고 조용한 마을은 사건을 잊고 평온한 마을로 돌아가지요.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 밀드레드는 마을 외곽의 대형 광고판 3개를 대여해 도발적인 문구를 게재합니다. 광고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경찰서장 월러비는 무능하다고 지탄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월러비 서장은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는 불치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동네에서 그는 신망 높은 경찰이며 그에 걸맞게 밀드레드의 사건도 열심히 수사했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요.

경찰서에서는 밀드레드에게 광고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한편, 광고판 소유업체에 광고료를 올리라고 압박합니다. 밀드레드는 돈이 부족해 광고를 내려야 할 지경에 이르지만 익명의 기부자가 돈을 주어 광고는 계속 유지하게 됩니다.

월러비 서장은 병으로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없다며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밀드레드, 딕슨(후배 경찰)에게 편지를 남깁니다. 편지에서 월러비는 밀드레드 딸의 사건을 해결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죄하며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는 딕슨에게 혐오를 버리고 진정한 경찰이 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한편 후배 딕슨은 편지를 읽기 전 월러비의 자살이 밀드레드 때문이라고 생각해 광고판 소유주를 찾아가 폭행하고, 새로 부임한 흑인 서장을 알아보지 못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해 해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광고판 3개는 모두 불타 버리는데 밀드레드는 이를 딕슨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복수를 위해 경찰서에 불을 지릅니다. 상징적인 의미로 지른 불이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퇴근시간에 불을 낸 것인데 공교롭게도 딕슨이 경찰서 안에서 몰래 월러비의 편지를 읽고 있다가 다치고 맙니다. 딕슨은 월러비의 편지를 읽고 느낀 바가 있어 밀드레드 딸의 사건파일을 챙겨 나오지요.

 

밀드레드의 방화를 목격한 목격자가 그녀를 비호하며 밀드레드는 처벌받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광고판을 불태운 것이 딕슨이 아니라 전남편(인간쓰레기)임을 알게 되지요.

 

딕슨은 화재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술집에서 만난 남자를 밀드레드 딸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합니다. 맞으면서까지 그의 DNA를 수집하지만 결국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고 밝혀집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범인만 아닐 뿐 강간범임은 분명했습니다. 딕슨과 밀드레드는 화해하고 그 강간범을 처단하자고 이야기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폭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밀드레드와 딕슨 모두 꽤 폭력적인 사람입니다. 각자의 사유로 정신적인 궁지에 몰려있지요.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서슴치 않는 결단력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들을 변화시킨 것은 월러비 경찰서장의 부드러운 회유였지요. 폭력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딸을 잃고 실의의 빠진 어머니가 아니라 (물론 고통 속에 있지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행동하는 밀드레드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피해자라고 모두 무기력하고 연약한 것은 아니지요. 그녀는 피해자이지만 누구를 괴롭혀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강고한 모습을 보이고 이 점이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합니다. 보는 관객으로서도 한두 번은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지요. 하지만 그런 모습도 고통을 이겨내려는 어머니의 모습이니 인정하고 존중해야겠지요. 모성의 감동극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밀드레드는 그런 어머니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 영화는 모성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서 한 인간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감동적인 모성애도 느낄 수 있고요.

화해와 치유의 엔딩

딕슨과 밀드레드가 화해한 엔딩은 주인공들의 심리 변화를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고통에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밀드레드 딸의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월러비 서장도 살아돌아오지 못했으며 딕슨의 해고도 철회되지 않았지요. 바뀐 것은 현실이 아닌 그들의 마음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이런 결말이 충분히 해피엔딩으로 느껴졌습니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 수 있으니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시간을 들여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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