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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미싱 영 우먼, 여성의 미래는 너무 쉽게 차순위가 된다

by 꾸준슬로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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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머랄드 펜넬 감독, 캐리 멀리건 주연

이 영화는 에머랄드 펜넬 감독의 첫 작품이라고 합니다.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고, 크리틱스 초이스 등에서 여우주연상도 받았습니다. 각본과 연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대목이지요.

주연 배우는 캐리 멀리건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장면에 캐리 멀리건이 출연하고 핵심 사건도 그녀의 회상, 내레이션으로 기술 되기 때문에 정말 비중이 높은 주연배우였는데요. 워낙 평소 연기도 잘하고 좋아하는 배우여서 기대한 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저는 친한 지인이 너무 좋은 영화라고 추천해서 보게 되었는데요. 내용도 좋지만 재미의 측면에서도 상당히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내 친구의 죽음에는 원인이 있다

(아래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캐시는 전도유망한 의대생이었으나 자퇴를 하고 현재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일상은 꽤 평화롭지만 의사가 될 것이라 믿었던 딸이 백수가 되었으니 부모님에게는 눈칫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인 니나가 있었는데요. 그 둘은 함께 의대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니나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집단강간을 당하게 되어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캐시는 함께 의대를 자퇴하여 친구를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니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요.(캐시가 니나의 엄마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니나의 엄마는 이제 니나를 놓아주고 너의 인생을 되찾으라고 얘기하지요) 니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에는 가해자들이 '전도유망'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았고 결국 니나만 소송 등으로 고통받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범죄의 트라우마는 당연히 극복하기 어렵겠지만 극복의 전제는 정의가 구현되고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다신 가해자를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그 모든 것이 실패하자 니나는 삶의 의지를 포기해버린 것이지요.

캐시는 니나를 잃고 역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심하게 시달리며 낮에는 무기력한 삶을 밤에는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을 향한 복수를 펼칩니다. 다른 사람처럼 꾸미고 술집, 클럽을 다니며 몹시 술에 취한 척 연기하고 상대방 남자가 술에 취한 본인을 성 착취하려고 할 때 맞받아치는 것이지요. 참으로 슬프게도 대부분의 남자가 그녀가 인사불성인 상황을 이용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캐시는 일부러 위험을 자처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시의 카페에 손님으로 의대 동기인 라이언이 나타납니다. 그는 의사가 되었지요. 그를 통해 니나의 성폭행 주범인 알이 결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적극적인 복수를 기획합니다. 당시 상황을 무마시켰던 학장, 가해자를 비호했던 변호사 등 관련자들을 찾아가 복수하지요. 다만 변호사는 진심으로 반성을 하고 있어서 용서하며 복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강력한 거부에도 라이언이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캐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둘은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평범한 연애의 일상을 보내는 캐시, 그렇게 과거의 한 페이지는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배신과 복수의 대단원

그러나 세상 일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캐시에게 또 다른 의대 동기가 나타납니다. 여자 동기였는데 니나에 대해 당할만 했다라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여자지요. 캐시는 그녀도 유사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 복수를 하는데 그녀가 뜻밖의 영상을 건넵니다. 알고 보니 니나의 집단강간을 누가 촬영해 학교에 유포했었던 겁니다. 영상을 확인한 캐시는 경악합니다. 영상 속에서 라이언이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지요. 극심한 배신감에 분노한 캐시는 라이언을 찾아갑니다. 라이언은 본인은 강간에 참여하지는 않았고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캐시는 범죄의 주범 알의 총각파티 장소를 라이언에게 알아내고 최후의 복수를 기획합니다.

스트리퍼로 분장하여 파티 장소로 향한 캐시는 알의 친구들을 잠들게 한 후 알을 죽이려 하지만 어이없게 알의 수갑이 풀리면서 되려 살해되고 맙니다. 이 부분에서는 제가 경악을 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죽고 만다니?

그러나 영화는 뜻밖의 반전을 보여줍니다. 다음 날 알는 원래 살던대로 범죄자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캐시의 시신을 유기하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곳에 캐시의 실종을 수사하던 경찰들이 도착하여 알을 체포합니다.

알고 보니 캐시는 일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여 본인이 연락이 안 될 때 증거와 장소를 넘기라고 변호사에게 부탁해 둔 것입니다. 변호사는 연락이 되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캐시가 말한 장소에서 그녀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캐시가 목숨을 걸고 달성한 복수는 성공합니다.

 

서글픈 결말, 어느 죽음도 더 가볍지 않다

참 결말이 씁쓸합니다. 캐시가 허무하게 알에게 죽나 싶었을 때도 너무 놀라고 실망스러웠지만, 결국 복수가 성공해서도 씁쓸함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니나는 자살을 했기 때문에 알은 그녀를 죽이고도 죄를 받지 않았지요. 캐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알을 처단한 겁니다. 

니나와 캐시는 결국 알에게 죽었고 알은 캐시의 죽음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그게 과연 옳을까요? 사실 니나도 애초 알의 성범죄가 없었다면 살아있을 겁니다. 왜 이렇게 정의구현을 위해 두 여자가 다 죽어야 했을까요.

성범죄에 대한 처벌도 괴이하게 가벼울 때가 많습니다만, 사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정말 솜방망이처럼 보입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초중고의 성범죄는 덮어지고, 전도유망한 청년의 미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대학의 성범죄가 은폐되지요. 미국도 한국과 다르지 않은 모양입니다. 한국의 감형 사유 중에 **공사를 다닌다, 명문대를 졸업했다 등도 있던데 참으로 기가 찬 노릇입니다. 이들이 나이가 든다고 달라질까요? 그저 전문직 성범죄자가 될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들의 미래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피해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건 양해하라는 게 현실이지요.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끼치고, 결말에 슬퍼지는 영화입니다. 언제쯤 우리는 이렇게 끔찍한 현실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미래의 한국 여성들에겐 더 나은 세상이 있길 바랍니다만, 현재로선 참 암울합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싶은 모든 분께 추천드리는 영화입니다. 여성이라면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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